‘경자유전’ 원칙과 농촌 현실의 충돌

‘경자유전’ 원칙과 농촌 현실의 충돌

정부, 1,100억 원 투입해 1996년 이후 취득 농지 전면 실태조사 강행
농촌 임차율 47% 육박·고령화 심화 속 투기 척결 명분과 체감 규제 간 괴리 심화

정부가 헌법상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확립하고 농지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농지 전수조사에 돌입했다. 이번 조사는 1996년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된 전국 농지 1,049만 필지(136만 헥타르)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1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항공사진과 다부처 행정정보를 교차 검증하며 불법 전용과 위장 영농을 단속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초기 기본조사 결과 전체의 약 27%가 농지법 위반 의심 사례로 분류되면서 농촌 현장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투기 세력 적발이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고령화와 임차농 중심의 농촌 구조가 획일적 법 잣대에 부딪혀 실경작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확산하는 양상이다.

경자유전 원칙의 제도적 한계 봉착… 투기 차단 명분으로 사상 첫 전수조사 돌입

농지는 전통적으로 식량 안보의 기반이자 투기 억제의 최우선 대상으로 관리되어 왔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 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 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한다. 이를 구체화한 현행 농지법은 1996년 시행 되었으며, 자기의 농업 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농지 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예외적 으로 상속이나 이농, 주말·체험영농 등 법이 정한 요건에 한해서만 제한적인 소유 및 임대차를 허용하는 구조다.

정부의 농지 관리는 2021년 이른바 ‘LH 사태’로 불린 신도시 예정지 농지 투기 사건을 기점으로 급격히 강화 되었다. 이후 감사원 감사를 통해 농지 관리 부실과 농 막 불법 증축 등이 다수 적발되었고, 정부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매년 실시하던 표본 중심의 농지이용실태조사를 전면 개편했다. 2026년 정부는 과거 역대 정부가 행정 부담을 이유로 회피했던 전국 단위 농지 전수조사를 전격 지시했다. 불법 행위를 근절하고 정확한 농지 데이 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는 목적이다. 특히 2025년 실태 조사에서 적발된 농지나 청문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농지는 이번 조사의 최우선 점검 대상으로 지정되며 고강도 검증을 예고했다.

빅데이터와 항공사진 결합한 2단계 정밀 심사… 지자체장 강제 처분 의무화 신설

이번 농지 전수조사는 ‘기본조사’와 ‘심층조사’라는 2단계 교차 검증 메커니즘으로 설계되었다. 1단계인 기본 조사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보유한 직불금 수령 내역, 농업경영체 DB, 토지대장, 등기부등본 및 최신 항공사진 등 행정정보를 종합 분석해 불법 의심 농지를 선별한다. 서류상 소유자와 실제 경작 정보가 일치하지 않거나, 항공사진 상 3년 이상 황폐화 및 임야화된 흔적이 확인된 농지는 묵은 휴경 등 불법 의심군으로 분류된다.

2단계 심층조사는 선별된 의심 농지를 대상으로 지자체 조사반이 현장에 출동해 실제 농업 경영 여부, 무단 휴경, 불법 전용 등을 조사하는 절차다. 농지에 설치된 농막, 축사, 비닐하우스 등 생산시설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농지대장에 등재되었는지도 검증한다. 비농업인의 상속 농지가 면적 상한인 10,000㎡를 초과했음에도 농지은행에 위탁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될 경우 곧바로 행정 처분 대상이 된다.

적발된 위반 농지에 대한 제재 수위 또한 과거보다 강화 되었다. 정당한 사유 없이 농업 경영에 이용하지 않는 농지는 사유 발생일로부터 1년 안에 처분해야 하는 의무가 부과되며, 이 기간 내 미처분 시 지자체장이 6개월 이내의 처분명령을 내린다. 특히 2026년 5월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존에 지자체장의 재량이었던 처분명령이 의무로 변경되었다. 처분명령마저 어길 경우 해당 농지 소유자에게는 매년 이행강제금이 반복적으로 부과된다.

농촌 임차율 47%·거래 절벽과 맞물린 체감 규제… 획일적 법 적용에 따른 부작용 속출

전수조사가 본격화되면서 투기 억제라는 법의 취지와 농촌 현실 간의 구조적 충돌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기본 조사 단계에서 위반 의심으로 분류된 농지가 전체의 약 27%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이 중 ‘불법 임대차 의심’이 21.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수치상으 로는 위반이 만연한 것으로 보이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현재 농촌의 임차농지 비중은 약 47%, 임차농 비중은 50% 수준에 육박한다. 즉, 위반 의심 사례 상당수가 투기 목적이 아니라 고령화된 원주민이 다른 농민에게 관행적으로 땅을 빌려준 결과로 분석된다.

현행 농지법은 질병이나 3개월 이상의 국외여행 등 극히 제한적인 사유만 임대차와 휴경을 허용할 뿐, 단순 고령화는 정당한 휴경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수십 년간 농지를 일궈온 고령 농민이나 상속받은 자녀 들이 범법자로 내몰려 강제 처분 명령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지자체의 처분명령이 의무화되고 조사 거부 시 과태료가 부과되면서 현장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강력한 규제가 농지 시장 침체와 맞물려 부작용을 키운 다는 통계적 반론도 제기된다. 농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농지 평균 실거래가는 2021년 ㎡당 8만1,434원에서 2025년 5만3,518원으로 4년 만에 34% 급락했으며 거래량 역시 4년 연속 감소했다. 투기로 인한 땅값 상승을 차단하겠다는 조사의 명분이 현재의 시장 통계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획일적 잣대가 지속될 경우 실경작자와 영세 지주들의 피해만 가중될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관행적 위반 구제 위한 특별조치법 추진… 법과 현실의 괴리 좁힐 입법 개선 시급

전수조사를 둘러싼 파장이 커지자 농식품부는 2026년 9월 말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간담회에서 “이번 조사는 농업인을 적발하고 처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투기와 중대한 불법 전용에 집중할 것” 이라고 밝혔다. 생계형 위반이나 관행적 임대차에 대해 서는 처분 대상에서 제외하고, ‘특별조치법’ 제정을 통해 충분한 기간 동안 양성화와 정상화 기회를 부여하겠 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행정적 구제책을 넘어 근본적인 법령 개정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농지은행을 통한 공적 임대차 비율을 현실에 맞게 확대하고,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농촌 현실을 반영해 고령에 따른 휴경 사유를 농지 법에 합리적으로 편입하는 입법 작업이 요구된다. 이번 농지 전수조사는 불투명했던 농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한다는 성과를 지니지만, 1996년에 제정된 경자유전의 틀이 2026년의 변화된 농촌 지형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무거운 정책적 과제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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