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일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보통 경제학이라고 하면 ‘생산, 분배, 소비’ 같은 교과서적 정의나 전문가들이 다루는 복잡한 수식과 지표들을 떠올린다. 이 때문에 경제학이 평범한 개인의 삶과는 다소 거리가 먼, 고상하고 엄숙한 학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어 보면 경제학은 그렇게 거창할 필요가 없는 학문이다. 경제학의 정의를 내릴 때, 복잡한 이론 대신 근대 경제학의 기틀을 닦은 알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의 문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은 이유가 여기 있다.

“경제학은 인간의 일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의 정의는 이 한 문장으로 충분하다. 19세기 후반, 경제학이 지나치게 추상적인 이론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했던 마셜은 학문의 시선을 다시 인간에게로 돌리고자 이 말을 남겼다. 그가 바라본 경제학의 본질은 책상 위의 정교한 숫자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궤적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일상’이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먹고사는 문제’다. 아침에 출근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행위(생산)는 경제학의 출발점이며, 흘린 땀의 대가로 월급을 받아 생활비를 쪼개는 행위(분배)는 경제학의 중심축이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거나 카페에서 돈을 쓰는 행위(소비)는 경제학의 종착지다. 오늘 점심은 무얼 먹을까, 이 물건을 사는 게 합리적일까 고민하는 사소한 순간들이 전부 우리의 일상이다.

이 평범한 일상을 들여다보면 경제학자들이 연구해 온 수많은 이론과 법칙이 이미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마트 마감 직전 세일 상품에 사람들이 몰리는 풍경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며, 뷔페식당에서 접시를 비울수록 만족감이 점차 줄어드는 경험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고민할 때 저울질하는 득실은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의 원리로 설명된다. 우리가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와 일자리 걱정 역시 거시경제학의 핵심인 ‘인플레이션’과 ‘실업 이론’의 영역이다.

결국 교과서에 등장하는 거창한 경제학 개념들도 따지고 보면 수많은 사람이 일상 속에서 먹고살기 위해 내리는 선택들을 보기 좋게 분류하고 정리해 둔 것에 불과하다. 일상을 떠난 경제학은 존재할 수 없다.

일상이란 매일 반복되기에 평범해 보이지만, 동시에 한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치열하고 중요한 무대다. 그러므로 경제학을 어렵고 엄숙한 학문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경제학은 차가운 수식이 아니라, 당장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장 소중한 ‘먹고사는 이야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마셜의 말처럼 경제학의 진짜 무대는 언제나 우리의 일상 속에 있다.

만약 한국은행이 국민은행을 통폐합해버린다면?

정부가 금융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며 전국의 모든 시중은행을 없애고, 한국은행 하나로 통폐합한다고 가정해 보자. 동네마다 행정복지센터가 있듯 한국은행 지점이 들어서고, 국민은 그곳에서 직접 예금과 대출을 한다. 국가가 운영하니 수수료도 없고 대출 이자도 획기적으로 낮아질 것만 같다.​​얼핏 완벽해 보이는 이 ‘직거래 시나리오’는 왜 현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을까. 이 극단적인 상상은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의 이원화된 시스템이 왜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지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이 효율성 이면에는 경제의 동맥경화, 나아가 체제 붕괴라는 치명적인 청구서가 숨어 있다.​​

실패로 끝난 거대한 실험, 동구권의 단일은행 체제​​

이 아이디어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이미 철저하게 실패로 끝난 거대한 경제 실험이다. 과거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 상업은행의 ‘이윤 추구’를 비판하며 단일은행제도(Monobank system)를 도입했다. 국가 소유의 거대한 중앙은행이 화폐 발권부터 기업과 개인의 여수신(예금과 대출) 업무까지 금융의 모든 기능을 독점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수요와 공급, 금리)이 아닌 ‘정치적 목적’과 ‘국가 경제 계획’에 따라 자금이 배분되었다. 은행은 수익성과 리스크를 평가할 유인이 없었으므로 자원 배분의 효율성은 바닥을 쳤다. 실적이 없는 국영 기업에 정치적 이유로 자금을 계속 투입했고, 파산해야 할 기업이 연명하면서 부실은 거대한 국립 은행으로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이 부실을 덮기 위해 은행은 통화량을 무분별하게 늘렸고, 이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국가 부도로 이어졌다. 자본주의가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을 철저히 분리하는 이유는 이 쓰라린 역사적 교훈과 맞닿아 있다.

​​심판과 선수의 분리, 거시와 미시의 역할 분담​​

중앙은행이 민간 거래를 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역할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중앙은행은 전체 경제의 통화량을 조절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심판’이며, 민간은행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장에서 뛰는 ‘선수’다.​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직접 시장 플레이어로 나서면, 무한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금리 경쟁을 주도하게 되고 기존 민간은행은 모두 구축되어 파산한다.​

더 큰 문제는 중앙은행의 본원적 기능이 마비된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거시(Macro) 경제 지표에 따라 통화 정책을 어떻게 펴야 할까”를 고민하는 기관이다. 만약 중앙은행이 수천만 명의 대출 심사, 담보 평가, 연체 관리 등 미시(Micro)적 리스크 관리에 행정력을 소모하게 된다면, 국가 경제 전체를 조율하는 통화 정책의 정교함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창조적 파괴를 이끄는 모험 자본의 실종​​

행정복지센터의 주민등록등본 발급은 동질적인 공공 서비스지만, 금융은 본질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자본을 쏟는 행위’다. 자본주의 경제의 역동성은 여기서 출발한다.​​

관료화된 거대 단일 은행은 리스크를 회피한다. 대출 부실이 발생하면 책임 추궁을 받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대기업이나 확실한 우량 담보가 있는 경제 주체에게만 자금을 공급한다. 반면, 주주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민간 상업은행은 다르다. 이들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치열하게 새로운 산업 트렌드를 분석하고, 유망한 벤처기업의 기술력을 평가하여 모험 자본을 공급한다.​​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강조한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인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는 이윤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민간 금융 시스템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단일 은행 체제에서는 혁신 기업에 자금을 수혈하는 이 혈맥이 끊어지며, 경제 전체의 성장 동력이 서서히 식어버린다.​​

위기 시 최후의 보루, 최종대부자의 상실​​

마지막으로, 금융 시스템을 지키는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기능이 사라지는 치명적 위험이 존재한다.​​부분지급준비제도를 채택하는 현대 금융 시스템에서는, 경제에 충격이 발생해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가 벌어지면 아무리 건전한 상업은행도 흑자 부도를 맞을 수 있다. 이때 중앙은행은 완벽하게 독립된 위치에서 무제한의 유동성을 공급해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아내는 최후의 소방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직접 개인 및 기업과 거래를 하다가 거액의 부실을 떠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중앙은행을 구원해 줄 상위의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발권력을 동원해 스스로 부실을 메우는 순간, 그 국가의 통화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화폐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다. 중앙은행이 민간 거래와 거리를 두고 완벽한 건전성과 독립성을 유지해야만, 국가적 경제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구원투수로 등판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행, 고신용자 대출에 집중… ‘포용금융’ 취지 무색

연체율 급등에 리스크 관리 비상… 중저신용자 금융 소외 현상 심화 우려


건전성 악화 위기감에 대출 문턱 높인 인뱅 3사
인터넷전문은행 3사(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가 최근 고신용자를 중심으로 대출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당초 이들은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중저신용자를 포용하겠다는 목표로 인가를 받았으나, 최근 거시경제 환경의 악화로 인해 경영 전략을 대폭 수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부진 여파로 인해 인터넷은행의 주 고객층인 청년층과 소상공인의 채무 상환 능력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이에 따라 각 은행의 연체율과 고정이하여 신비율* 등 주요 건전성 지표가 금융당국의 권고치를 위협할 수준으로 상승했다. 은행권에서는 자본력이 상대 적으로 부족한 인터넷은행들이 대규모 부실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인위적으로 축소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건전성 관리가 시급해진 인터넷은행들은 우량 직장인이나 고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 및 신용대출 잔액을 늘리는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고금리 쇼크와 부실 리스크 확대가 낳은 보수화 기조
인터넷은행이 대출 영업에서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취약차 주의 부실 리스크 전이 가능성이다. 중저신용자는 신용 점수가 낮고 담보 능력이 부족해 금리 변동성에 매우 취약한 특성을 가진다. 금리 인상기에는 이들의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연체로 직결될 확률이 일반 차주에 비해 월등히 높다. 더욱이 인터넷은행들은 출범 초기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공격적으로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려왔기 때문에, 경기 하강 국면에서 시중은행보다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강화를 주문하며 은행권 전반에 대출 조이기를 압박한 것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인터넷은행들은 수익성과 건전성을 동시에 확보 하기 위해 부도 위험이 낮은 고신용자 대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결국 리스크 회피 중심의 영업 행태로 고착화되고 있다.


설립 인가 조건 위배 논란과 중금리 대출 시장의 공백
가장 큰 쟁점은 인터넷은행들의 현재 영업 행태가 금융 당국으로부터 은행업 인가를 받을 당시 내세웠던 핵심 명분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과거 인터넷은행 도입 당시 기존 은행권이 품지 못하는 씬파일러(금융이력부족자)와 중저신용자에게 혁신적인 대안신용평가모형(CSS)*을 통해 중금리 대출을 공급 한다는 조건을 달아 특례를 부여했다. 그러나 현재 인터 넷은행들이 시중은행과 다를 바 없이 고신용자 주택담보대출 등 안전 자산 위주의 영업에 몰두하면서 무늬만 인터넷은행이라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이들이 중금리 대출 공급을 축소함에 따라, 신용점수 하위 50%에 해당 하는 차주들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로 밀려나는 연쇄 이동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전체 금융 시스템 내에서 서민들의 이자 비용을 폭증시키고 가계 경제의 질을 하락시키는 뇌관으로 작용하며, 포용금 융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낳고 있다.

혁신 금융의 실패인가, 피할 수 없는 현실적 타협인가

시장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인터넷은행의 혁신 실패라는 비판과 현실적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동정론 으로 양분되어 있다.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측은 인터넷은행들이 그동안 장담해 온 대안신용평가모형의 변별력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해 숨은 우량 차주를 발굴 하겠다던 기술적 혁신이 고금리 파고를 넘지 못한 채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반면, 인터넷은행 업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은행의 본질적 가치인 자산 건전성이 붕괴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예금자 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맹목적인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는 오히려 무책임한 경영이라는 평가다. 금융산업의 특성상 규제와 거시경제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만큼, 인터넷은행에게만 무리하게 사회적 책임을 강요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팽팽하게 맞서며 정체성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신용평가모형 고도화 및 정책적 안전망 구축의 시급성

인터넷은행의 대출 보수화 현상은 국내 금융시장에 정교한 리스크 관리 기법 도입과 포용금융을 뒷받침할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선, 인터넷은행들은 통신 데이터, 이커머스 결제 내역 등 비금융 대안 데이터를 더욱 정밀하게 분석하여 신용평가모 형을 근본적으로 고도화해야 한다. 경기 침체기에도 부실 위험을 정확히 타겟팅할 수 있는 자체적인 리스크 헤 지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면, 결국 시중은행과의 금리 경쟁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금융당국의 획일적인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 목표치 부과 방식도 재고될 필요가 있다. 무조건적인 양적 목표 달성 압박보다는, 은행이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포용금융을 실천할수 있도록 대손보전기금 확대나 정책금융상품과의 연계 강화 등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와 안전망이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 민간 은행의 기술력과 공공의 정책적 지원이 결합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금융 혁신이 가능하다.

규제 완화와 관리 감독 사이, 당국의 딜레마와 과제

금융당국 역시 인터넷은행의 대출 보수화 사태를 두고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깊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한편으 로는 가계부채의 질적 악화를 막고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은행권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하지 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은행 설립 취지인 중저신용자 대출 공급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 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출 목표치 산정 방식을 일부 완화해주면서도, 서민금융 진흥원 등과 연계한 보증부 대출 상품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선회를 모색하고 있다. 무리한 대출 압박이 오히려 은행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유연한 규제 적용을 통해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향후 금융당국은 인터넷은행이 자체적인 신용평가 역량을 입증할 수 있도록 데이터 결합을 지원하는 동시에, 촘촘한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하여 틈새 시장을 메우는 역할을 회복하도록 유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금리 인하 기대감 속 건전성 중심의 제한적 성장 전망

향후 인터넷은행들의 대출 영업 기조는 당분간 현재의 보수적인 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하반기 들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으나, 누적된 가계부채 규모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등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역시 은행권 전반에 걸쳐 강력한 자본 확충과 손실흡수능력 제고를 요구하고 있어, 인터넷은행들이 무리하게 취약차주 대출을 확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코스피 7000 시대 개막, 한국 증시 새 역사 썼다

AI·반도체 수퍼사이클 타고 7384 마감… ‘빚투’ 36조 과열 우려도


한국 증시가 사상 처음으로 ‘꿈의 7000선’을 돌파하며 자본시장 역사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 6일 코스피 지수는 외국인의 거센 매수세에 힘입어 6.45% 폭등한 7384.56으로 마감했다. 미국·이란 간 지정학적 위기를 딛고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수퍼사이클이 강력한 상승 동력으로 작용하며 삼성전자는 25만 원, SK하이닉스는 160만 원 고지를 밟았다. 하지만 단기 급등에 따른 36 조 원 규모의 신용융자 증가와 자산 격차 심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 돌파, 70일 만에 7000선 직행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라는 거대한 암초를 만났음 에도 불구하고, 한국 증시는 특유의 회복탄력성을 바탕 으로 빠르게 반등에 성공했다. 앞서 코스피는 미국·이스 라엘과 이란 간의 물리적 충돌이 격화되기 직전인 지난 2월 말 6000선을 돌파한 바 있다. 이후 지정학적 리스 크가 불거지며 시장이 일시적으로 출렁였으나, 확전 우려가 다소 완화되면서 글로벌 자금이 다시 위험 자산으로 빠르게 회귀하기 시작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매수세가 국내 증시로 유입되면서 불과 두 달여 만에 지수가 1000포인트 이상 급등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러한 V자형 반등은 과거 중동 사태 시기마다 겪었던 장기 침체 패턴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한국 증시의 펀더멘털이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해졌음을 시사한다. 코스피 7000 돌파는 단순한 지수 상승을 넘어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국내 자본시장의 체력 강화를 입증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AI 혁명과 반도체 수퍼사이클이 이끈 ‘코스피의 재평가’
이번 코스피 7000 시대 개막의 가장 핵심적인 원동력은전 세계를 강타한 인공지능(AI) 혁명과 이로 인한 반도체 산업의 수퍼사이클* 진입이다. 챗GPT 등 생성형 AI 의 발전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고대역폭 메모리
(HBM)를 비롯한 고성능 반도체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게 천문학적인 실적 개선을 안겨 주었다.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단숨에 25만 원을 돌파하 고, SK하이닉스가 160만 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주가를 기록한 것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압도적인 기대감을 방증 한다. 단순히 반도체에 그치지 않고 AI 전력 수급을 위한 전력기기 산업, 그리고 배터리 등 관련 밸류체인 전반으로 상승 랠리가 확산되면서 지수를 강하게 밀어 올렸다. 기업들의 이익 추정치가 매일같이 상향 조정되는 가운 데, 펀더멘털에 기반한 폭발적인 실적 장세가 코스피의 역사적 저평가를 일거에 해소해버린 것이다.

36조 원 육박한 ‘빚투’ 열풍…시장 과열 부작용 속출
지수가 유례없는 속도로 급등하면서, 투자자들의 탐욕이 빚어낸 시장 과열과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이 심각한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코스피가 7000선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신용거 래융자 잔고*는 사상 최대치인 36조 원을 넘어 임계점에 다다랐다. 주가 하락 시 반대매매로 인한 연쇄 폭락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지만, 상승장에 올라타려는 투자자들의 베팅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자산운용사들의 과도한 상장지수펀드(ETF) 마케팅 경쟁과 증권사들의 자극적인 광고가 투자자들의 투기 심리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거세다. 금융당국은 일부 고위험 파생상품의 신규 매수를 중단시키고 기획 점검에 착수하는 등 진화에 나섰으나, 시장의 광기를 잠재우 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작은 변동성에도 개인 투자 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외줄 타기가 이어지면서, 시장 안정화를 위한 강력한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vs 유동성이 만든 단기 거품
코스피 7000 돌파를 바라보는 시장의 평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완전한 해소’라는 환호와 ‘비정상적 유동성이 만든 단기 거품’이라는 우려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의 압도적인 기술 경쟁력과 이익 창출 능력이 드디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평가 한다. 외국인 자금의 구조적 유입이 이를 뒷받침하며, 한국 증시가 한 단계 레벨업하는 질적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반면, 실물 경제의 회복 속도와 괴리된 채 단기 간에 지수가 수직 상승한 것은 펀더멘털보다는 투기적 수급과 과도한 쏠림 현상이 빚어낸 착시 효과라는 냉소 적인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코스피의 화려한 비상 이면 에서 여전히 1200선 박스권에 갇혀 있는 코스닥 시장의 상대적 소외 현상은 국내 증시의 구조적 불균형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현재의 주가 수준이 거품인지 아닌지는 향후 기업들이 기대치에 부합하는 실적을 실제로 증명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자산 격차 심화 방지, 금융투자소득세 논의 재점화
역사적인 지수 상승의 이면에 짙게 드리워진 자산 격차 심화 문제는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무거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주식 시장의 랠리에 편승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간의 부의 양극화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지면서, 근로 의욕 상실과 사회적 박탈감 등심각한 후폭풍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 서는 지난 2024년 윤석열 정부가 증시 위축을 명분으로 전격 폐지했던 금융투자소득세*를 비롯해 주식 양도차 익에 대한 과세 방안을 다시 공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투자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를 통한 부의 쏠림을 적절히 조세 제도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건강한 경제 생태계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코스피 7000 시대의 안착을 위해서는 단순히 지수 상승에만 환호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성과가 사회 전반으로 건강하게 선순환될 수 있도록 조세 형평성과 소득 분배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남긴다.

9000선 상향 조정… 글로벌 경기 둔화 여부 변수


코스피가 꿈의 고지를 점령한 이후 국내외 증권가에서는 지수의 향방을 두고 장밋빛 전망과 신중론이 교차하며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으로 숨 고르기 장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요 증권사들은 기업 이익 추정치의 가파른 상승세를 근거로 코스피 목표치를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있다. 특히 NH투자증권은 코스피 12개월 선행 목표 치를 9000선으로 대폭 올려 잡았으며, 시장 일각에서는 ‘코스피 1만’ 시대도 허황된 꿈이 아니라는 극단적인 낙관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시장의 방향성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고유가 장기화에 따른 인플 레이션 재점화 가능성과 글로벌 금리 인하 지연, 그리고 신흥국 수요 둔화 등 거시 경제의 불안 요소들이 여전히 뇌관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결국 코스피가 7000
선을 지지선 삼아 추가 상승 랠리를 펼치기 위해서는 반도체 이외의 타 산업군으로의 실적 개선 확산과 거시 경제 변수의 안정화가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유고 시의 체제 영속성을 위한 개헌 분석

2026년 개헌이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상태가 양호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면,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를 법 체계 위에 두는 기존의 통치 방식을 유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김정은 사후 체제 유지를 위한 사전 조치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우선, 개정 헌법 제89조에서 핵무력 지휘권의 위임 가능성을 명시한 점은 지도자 사망 이후의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추측된다. 만약 지도자의 급작스러운 유고가 발생할 경우, 핵 통제권이 마비되는 상황을 방지하고 하부 기구가 보복 체계를 가동하게 함으로써 외부 세력의 참수 작전을 억제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을 수 있다. 이는 지도자가 부재하더라도 핵 억지력만은 시스템적으로 작동하게 하려는 절박한 사후 대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또한 제104조를 통해 국무위원장에 대한 최고인민회의의 소환권을 폐지한 것은, 지도자 사망 직후의 권력 공백기에 내부 엘리트 집단이 합법적 절차를 빌려 정변을 일으키거나 후계자를 축출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로 예상된다. 지도자 유고 시 발생할 수 있는 내부 반발을 법적으로 원천 봉쇄하여, 후계자가 지위를 안정적으로 승계할 수 있는 방어막을 구축하려 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국무위원장을 대외적인 ‘국가수반’으로 정의한 조항은, 승계자가 즉각적인 국제법적 권위를 행사하게 하여 주변국이 북한을 지도자 없는 급변 사태 지역으로 규정하고 개입할 명분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K-바이오 신화의 주역,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초격차’ 연대기

기업 개요

  • 법인명: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회사 (Samsung Biologics Co., Ltd.)
  • 설립일: 2011년 4월 22일
  • 대표이사: 존 림 (John Rim)
  • 사업분야: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위탁개발(CDO), 위탁연구(CRO)
  • 상장 여부: 유가증권시장(KOSPI) 상장 [종목코드: 207940]
  • 소재지: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바이오대로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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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봄, 인천 송도의 갯벌 위에 삼성의 깃발이 꽂혔을 때 업계의 시선은 차가웠다. 전자와 반도체로 세계를 제패한 삼성이 생소한 바이오 산업에 진출한다는 소식에 비관적인 전망이 잇따랐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불과 10여 년 만에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삼성의 성공 DNA인 ‘초격차’ 전략을 바이오 공정에 이식하며, 무모해 보였던 도전은 K-바이오를 상징하는 거대한 신화가 되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역사는 속도전의 기록이다. 2011년 법인 설립 직후 착공한 1공장은 25개월 만에 완공되었고, 이어지는 2공장과 3공장은 각각 세계 최대 규모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건설되었다. 반도체 공장 건설 노하우를 접목해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한 ‘삼성 스피드’는 보수적인 제약 업계에서 혁신으로 통했다. 2022년 부분 가동을 시작한 4공장은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인 24만 리터의 생산 능력을 갖추며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압도적인 세계 1위 CMO 기업의 반열에 올렸다.

사업 영역의 확장도 거침없었다. 단순 위탁생산에 그치지 않고, 의약품 세포주 개발부터 공정 설계까지 책임지는 위탁개발(CDO) 분야로 발을 넓혔다. 고객사가 아이디어만 가져오면 최종 의약품이 나올 때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원스톱 서비스’는 글로벌 빅파마들의 요구를 정확히 관통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모더나 백신의 완제 생산을 맡아 단기간에 성공시키며 전 세계에 자사의 공정 역량과 신뢰도를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객 명단은 화이자, 로슈, GSK, 일라이 릴리 등 글로벌 20대 제약사 중 16곳이 이름을 올릴 정도로 화려하다. 2016년 유가증권시장 상장 이후 시가총액 상위권을 지키며 한국 증시의 핵심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에는 미국 바이오젠이 보유했던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전량 인수하며 자회사로 편입,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연구개발 역량까지 완전히 내재화했다. 이는 생산과 개발, 판매를 아우르는 통합 바이오 기업으로의 도약을 의미했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2바이오캠퍼스 구축을 통해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2025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인 5공장은 기존의 생산 효율을 극대화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며 차세대 생산 기지의 표본이 될 전망이다. 아울러 차세대 항암제로 주목받는 항체-약물 접합체(ADC) 전용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관련 기술 투자를 확대하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양적 성장을 넘어 기술 중심의 질적 성장을 꾀하려는 전략이다.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행보도 눈에 띈다. 글로벌 탄소중립 흐름에 맞춰 ESG 경영을 강화하고 있으며, 공급망 관리 체계를 고도화하여 대외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생산 기지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인천 송도를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 클러스터로 만든 일등 공신으로서, 지역 사회 및 국내 중소 바이오 기업과의 상생 모델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단순한 제조 공장을 넘어 글로벌 생명과학의 허브를 꿈꾸고 있다. 전 세계 인류의 건강 증진이라는 대의 아래, 더 빠르고 안전하게 혁신 의약품을 공급하겠다는 의지는 공고하다. 척박한 땅에서 일군 13년의 기적은 이제 전 세계 바이오 산업의 표준이 되었으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써 내려갈 다음 페이지는 인류의 질병 정복을 앞당기는 초격차 기술의 향연이 될 것이다.

포스트 트럼프에서 보편의 시대로: 국가 패권의 거대한 해체

1990년 냉전 종식 이후 약 40년간 지속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했으나 가장 짧은 단극 체제로 기록될 것이다. 2026년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국제 질서의 혼란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규칙을 수호하던 미국이 스스로 그 가치를 저버리며 초래한 ‘신뢰의 붕괴’에서 출발한다. 미국이 동맹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거래와 착취의 파트너로 대하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섰고, 미국이 자진해서 비워낸 패권의 공백을 중국의 실리적 경제망이 파고들며 ‘팍스 차이나(Pax Sinica)’의 서막을 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차지할 세계 1등의 자리는 인류 역사상 마지막 패권이자, 고작 10년에서 20년 정도 이어질 짧은 과도기에 불과할 것이다. 현재의 중국은 시진핑이라는 1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고도화된 전체주의 체제로, 이는 과거 소련의 몰락을 불러온 스탈린 체제의 재판이다. 시진핑은 덩샤오핑이 구축한 집단지도체제와 임기제라는 안전장치를 모두 파괴하며 스스로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들었으나, 바로 그 지점이 체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절대 권력자의 부재가 불러올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과 유연성 없는 체제의 경직성은 시진핑 사후 중국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 아닌, 내부 폭발을 견뎌내야 하는 흔들리는 거인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이 짧은 제국의 종말을 가속화하는 결정적 변수는 AI와 로봇 기술의 정점이다. 중국은 이 기술들을 완벽한 통제와 감시의 도구로 활용하려 하겠지만, 기술의 본질은 결국 탈중앙화와 권력의 해체를 향한다.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고 AI가 정보와 지적 생산을 전 지구적으로 평등하게 분배하는 순간, 국가가 자원을 독점하여 개인을 지배하던 시대의 효율성은 급격히 무너진다. 중국은 패권이라는 구시대 유산의 마지막 계승자로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기술이 가져올 생산의 민주화라는 변곡점에서 해체될 운명에 처해 있다.

중국 패권 붕괴 이후의 세계는 더 이상 또 다른 강대국의 등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국가라는 거대 담론과 패권의 논리가 사라진 자리를 메우는 것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글로벌 시민들의 보편적 이성이다. 특정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기술이 부여한 평등한 생산력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개별 시민이 주권자가 되어 목소리를 내는 ‘보편 타당한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1990년부터 시작된 짧았던 미국의 꿈은 중국이라는 고통스러운 정거장을 거쳐, 마침내 기술이 완성할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평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물론 이 평등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공산주의와는 그 궤를 전혀 달리한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는 요제프 슘페터가 예견했던 ‘자본주의가 그 성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도달하게 될 필연적 진화’에 가깝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성숙해 기업가 정신이 시스템화되고, AI와 로봇 기술이 인류의 결핍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풍요의 정점에 이르면, 이윤을 향한 처절한 투쟁과 사유재산의 배타적 권리는 자연스럽게 그 동력을 상실한다. 이는 혁명을 통한 인위적인 탈취가 아니라, 기술적 완성이 가져온 가치의 자연스러운 이행이자 보편화인 셈이다. 제국들이 쌓아 올린 기술적 성취가 마침내 국가라는 낡은 그릇을 깨뜨리고 모든 개인에게 평등한 권력과 생산력으로 환원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할 ‘보편 타당한 시대’의 진정한 실체다.

한국은 아직 ‘제3차 오일쇼크’에 들어서지 않았다

지금 한국 경제를 두고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별일 아닐 것”이라는 안이함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제3차 오일쇼크가 왔다”는 성급함이다. 2026년 3월 현재, 우리 경제는 그 두 극단 사이의 위태로운 문턱에 서 있다. 1970년대식 전면적 오일쇼크가 현실화했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분명한 위기의 입구에 들어선 것이다. 이번 충격이 며칠간의 공포를 넘어 수주, 수개월의 공급 차질로 고착된다면 위기는 ‘가능성’이 아닌 ‘현실’의 영역이 된다.

이번 사태를 가볍게 볼 수 없는 본질적 이유는 유가 상승 그 자체보다 ‘공급의 불안정성’에 있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이번 중동 충격으로 하루 1,100만 배럴의 공급 차질이 발생했다고 진단하며 추가 비축유 방출을 검토 중이다. 우리 외교부가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안전을 이란에 직접 요청할 만큼 상황은 엄중하다. 이는 시장이 단순히 ‘비싼 기름’을 걱정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물량이 제때 도착할 수 있느냐를 우려하는 실물 국면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구조적으로 이러한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원유의 약 70%, LNG의 약 2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원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나프타 수급 불안으로 LG화학 여수 에틸렌 설비 일부가 멈춰 섰다. 충격은 주유소 가격표보다 먼저 정유·석유화학·해운·항공 등 국가 기간산업의 원가 구조를 흔든다. 오일쇼크는 소비자가 체감하기 전, 산업 현장에서 먼저 시작되는 법이다.

물론 1970년대식 국가적 패닉으로 곧장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에겐 과거와 다른 ‘완충장치’가 있다. 한국은 IEA 회원국 간의 공조 체제 안에 있으며, 한국석유공사는 2024년 말 기준 9,949만 배럴의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다. 즉, 무방비 상태로 국제유가 그래프만 바라보던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비축유, 대체 조달, 정책 대응이라는 겹겹의 방어선이 외부 충격을 내부에서 흡수하며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방어선은 영구적이지 않다. 비축유는 시간을 벌어줄 뿐 위기의 본질을 제거하지 못한다. 일본 정유업계가 미주산 원유로 눈을 돌리고, 우리 정부가 러시아산 원유와 나프타 재도입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것은 시장이 이미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는 방증이다. 대체 수입선 확보가 절실하지만, 치솟는 운임과 보험료, 뒤엉킨 항로는 결국 가격 충격을 물량 충격으로, 다시 산업 전체의 차질로 전이시킬 위험을 품고 있다.

결국 관건은 ‘시간’이다. 호르무즈 통항 차질이 단기에 진정되고 공급망 복구가 빨라진다면 이번 위기는 관리 가능한 수준의 에너지 충격으로 남을 것이다. 반대로 공급 불안이 고착화되어 산업용 원료를 넘어 전력, 운송, 식품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밀어 올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순간 우리는 ‘쇼크가 올 것인가’를 묻는 단계를 지나,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계산해야 하는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아직 제3차 오일쇼크의 한복판에 있지 않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추상적 위험으로 치부할 시점도 이미 지났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낙관도, 근거 없는 공포도 아니다. 공급선 다변화, 비축유의 전략적 운용, 산업 원료 우선순위 조정 등 현실적인 대응책을 냉정하게 집행하는 일이다. 위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우리의 대비만큼은 이미 확정되어 있어야 한다.

아마존의 스마트폰 재도전, 이번에는 무엇이 달라야 하나

최근 아마존이 스마트폰 시장 재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이것은 아직 공식 출시 발표가 아니라, 개발 단계에서 흘러나온 구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시장이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마존이 다시 스마트폰을 만든다면, 그것은 단순히 새 기기를 하나 내놓는 문제가 아니라 Alexa와 Prime을 중심으로 한 자사 생태계를 손안의 인터페이스로 압축하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이미 한 차례 스마트폰 시장에 도전했다가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2014년 출시된 파이어 폰은 출발부터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무엇보다 앱 생태계가 약했다. 안드로이드 기반이었지만 주류 앱 환경과 완전히 호환되지 않았고, 사용자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핵심 앱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여기에 제품의 대표 기능으로 내세운 3D 시각 효과나 특수 기능들은 실용성보다 보여주기식 장치로 받아들여졌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굳이 아이폰이나 갤럭시를 떠나 파이어 폰으로 옮겨갈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가격 전략도 잘못 짜였다. 시장에서 신뢰를 충분히 얻지 못한 첫 제품이 기존 프리미엄 스마트폰과 비슷한 가격대를 내세우자,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이미 검증된 선택지를 택했다. 결국 아마존은 출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격을 대폭 낮췄지만, 이는 오히려 제품 포지셔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로 읽혔다. 한마디로 파이어 폰은 비싼데 앱은 부족했고, 차별화 포인트는 생활의 편의가 아니라 기믹에 가까웠다. 실패는 어쩌면 예고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가장 먼저 달라져야 할 것은 앱과 사용 경험에 대한 접근이다. 지금은 아무리 AI 기능이 발전해도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에서 메신저, 지도, 결제, 은행, 업무용 앱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마존이 AI 중심 인터페이스를 내세우더라도, 기본적인 앱 접근성과 호환성에서 불편을 주면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AI가 앱을 완전히 대체하는 미래를 말하기보다, 기존 사용 습관 위에 자연스럽게 얹히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다.

가격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번 재도전이 성공하려면 정면승부형 프리미엄 스마트폰보다는 중간 가격대의 실용적 기기, 혹은 분명한 목적을 가진 보조 단말의 성격이 더 어울린다. 지금의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상위 브랜드들이 굳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마존이 또다시 아이폰과 갤럭시의 정면 경쟁자로 나선다면 승산은 크지 않다. 오히려 “왜 이 제품을 하나 더 써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

대표 기능의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이번에는 신기한 기능보다 매일 쓰게 되는 기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아마존의 강점은 원래 하드웨어 자체보다 서비스의 연결에 있다. 장보기, 콘텐츠 소비, 가정 내 기기 제어, 일정 관리, 검색과 주문 같은 생활 동선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어주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사용자가 “이 폰은 뭔가 특별하다”라고 느끼는 지점도 결국 여기에서 나와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실제로 더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마존이 다른 기업보다 앞세울 수 있는 강점 역시 바로 그 생태계에 있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운영체제의 결합력이 강하고, 삼성은 제조 역량과 글로벌 유통망이 강하다. 반면 아마존은 회원제 서비스, 전자상거래, 콘텐츠, 스마트홈, AI 비서를 한 흐름으로 묶을 수 있다. Prime, Alexa+, 쇼핑, 배송, Fire TV, Ring 같은 서비스들이 하나의 기기 안에서 매끄럽게 연결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아마존 폰은 뚜렷한 개성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아마존의 경쟁력은 카메라 성능이나 칩셋 숫자가 아니라, 자사가 이미 구축해 놓은 서비스 세계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손안에 옮겨오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이 강점은 동시에 위험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은 집 안의 스피커보다 훨씬 더 많은 개인 정보를 담는 기기다. 위치 정보, 검색 기록, 구매 이력, 생활 패턴까지 모두 한곳에 모인다. 따라서 아마존이 이번에 신뢰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생태계의 결합력은 강점이 아니라 불안 요인으로 바뀔 수 있다. 사용자는 편리함을 원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어디까지 제공하는지도 분명히 알고 싶어 한다. 이번 재도전에서 프라이버시는 부가적인 요소가 아니라 성공의 전제 조건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이번 재도전의 핵심은 분명하다. 아마존이 다시 스마트폰 시장에 들어온다면, 단순히 또 하나의 폰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 과거처럼 하드웨어 자체의 신기함만으로 승부하려 한다면 같은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는 스마트폰을 팔겠다는 생각보다, 아마존이 이미 갖고 있는 서비스와 AI 경험을 가장 실용적인 방식으로 묶어 내는 개인용 인터페이스를 만든다는 발상으로 접근해야 한다. 아마존의 성패는 결국 더 좋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보유한 생태계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하나의 경험으로 조직하느냐에 달려 있다.

독일과 일본의 교훈, 한국 수출의 다음 10년

한국의 연간 수출 7,000억 달러 달성은 기록적인 성과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짚었듯이, 한국은 2025년 7,093억 달러를 기록하며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여섯 번째로 ‘7,000억 달러 수출국’ 반열에 올랐다. 다만 이 성과를 곧바로 “수출 체질의 승리”로 해석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 보고서가 강조하듯 이번 기록에는 반도체 가격 급등이 크게 작용했으며, 오히려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은 감소했다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의 흐름을 보더라도 한국 수출은 여전히 반도체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6년 1월과 2월 수출은 각각 658억 5,000만 달러, 674억 5,000만 달러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으나, 이 중 2월 반도체 수출(251억 6,000만 달러)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성장을 주도했다. 같은 달 ICT 수출 또한 전년 동월 대비 103.3% 급증한 336억 2,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체 수출의 49.8%를 차지했다. 겉으로는 눈부신 숫자지만, 실상은 한국 수출 증가분의 절반 가까이를 반도체가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호황기의 자신감보다는, 업황 하강 시 더 크게 흔들릴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설상가상으로 향후 통상 환경은 7,000억 달러를 달성할 당시보다 더욱 녹록지 않다. WTO는 2025년과 2026년 세계 상품무역 증가율을 각각 0.9%, 1.8% 수준의 저성장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IMF 역시 2026년 세계 성장률을 3.1%로 전망하며 관세 장벽과 정책 불확실성을 주요 하방 리스크로 꼽았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세계 교역의 완만한 증가’보다 무서운 것은 ‘높은 불확실성의 장기화’다. 이제는 수출 총액이라는 외형보다, 어떤 품목과 시장에서 얼마만큼의 회복탄력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 지점에서 독일의 교훈은 뼈아프다. 독일은 한때 독보적인 제조업 경쟁력과 글로벌 분업의 수혜를 입으며 유럽 최강의 수출국 지위를 지켰으나, 최근 높은 에너지 가격, 숙련 노동력 부족, 낮은 생산성, 디지털 전환 지연이 겹치며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OECD는 독일의 부진 배경으로 제조업 경쟁력 저하와 혁신 역동성 상실을 지목했고, 독일 연방은행 또한 2026년 초의 회복세가 미약할 것으로 진단했다. 한국이 현재의 제조 우위를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독일의 오늘은 한국의 내일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사례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7,000억 달러 수출국에 오른 뒤에도 강한 제조업 기반을 유지했으나,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와 구조개혁 지연, 더딘 디지털 전환에 발목을 잡혔다. IMF는 일본의 잠재성장률이 0.5%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고 생산성 개선과 여성·고령층의 노동 참여 확대, AI 활용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일본 경제산업성 역시 2025년 백서를 통해 보호무역과 디지털 경쟁 속에서 부가가치 극대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반도체 낙관론’에 안주한다면, 일본식 장기 정체의 그림자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한국 수출의 다음 10년은 “얼마나 더 팔 것인가”보다 “무엇을, 어디에, 어떤 구조로 팔 것인가”에 성패가 달려 있다. 반도체의 경쟁력은 지켜내되, 자동차와 선박을 비롯해 바이오, 방산, 문화소비재, 산업 소프트웨어 및 제조 AI까지 포트폴리오를 과감히 넓혀야 한다. 특정 국가에 편중된 시장 구조를 아세안, 인도, 유럽 등으로 다변화하는 체질 개선도 필수적이다. 2026년 2월 대미·대중·대아세안 수출이 동반 증가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것이 일시적 호황에 그치지 않으려면 산업 고도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7,000억 달러는 종착지가 아니다. 한국 수출이 독일처럼 전환의 타이밍을 놓치거나 일본처럼 구조개혁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면, 향후 10년은 ‘수출 규모의 시대’를 넘어 ‘수출 구조의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