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인물] 필 나이트 나이키 창업

필 나이트

나이키 제국을 건설한 영원한 ‘슈독’

인물 개요
• 이름: 필 나이트 (Philip Hampson Knight)
• 출생: 1938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 국적: 미국
• 직업: 나이키(Nike, Inc.) 공동 창업자 및 명예회장

필 나이트는 1938년 2월 24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에서 태어났다. 오리건 대학교에 진학해 육상팀에서 중거리 주자로 활동했던 그는, 당시 전설적인 육상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을 만나며 신발 구조와 스포츠맨십에 대한 깊은 이해를 싹틔웠다. 대학 졸업 후 군 복무를 마치고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MBA)에 진학한 그는 ‘ 일본산 카메라가 독일산 카메라를 대체했듯, 일본산 운동화가 독일산 운동화를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의 소논문을 작성하며 스포츠 용품 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 했다. 졸업 직후인 1962년 무작정 일본 고베로 건너간 그는 오니츠카 타이거(현 아식스) 임원진을 설득해 미국 서부 지역의 독점 판매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1964년 나이트는 바우어만 코치와 각각 500달러씩을 출자해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를 공동 창업 했다. 사업 초기 그는 자신의 낡은 녹색 플리머스 밸리언트 자동차 트렁크에 일본에서 들여온 운동화를 가득 싣고 미국 전역의 육상 대회를 돌아다니며 선수들에게 직접 신발을 팔았다. 매출은 매년 두 배씩 빠르게 성장했지 만, 그만큼 재고 확보를 위한 현금 흐름은 극도로 악화되 었다. 나이트는 수표가 부도나고 파산 직전까지 몰리는 끔찍한 위기를 수차례 겪었으나, 일본의 종합상사 닛쇼 이와이로부터 극적인 금융 신용 지원을 이끌어내며 최악의 자금난과 은행의 외면을 이겨냈다.

1970년대 초반 오니츠카 타이거와의 법적 분쟁 및 결별, 그리고 아디다스와 푸마 등 당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거대 경쟁사들의 견제를 겪은 블루 리본 스포츠는 독자 브랜드 구축이라는 중대한 기로에 섰다. 1971년 나이트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에서 착안한 새로운 사 명과 단돈 35달러에 그래픽 디자인 전공 학생에게 의뢰한 ‘스우시(Swoosh)’ 로고를 도입하며 독립 브랜드 나이키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후 바우어만 코치가 아내의 와플 기계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한 ‘와플 솔’ 기술을 적용한 혁신적인 운동화가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본격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나이트는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가 가진 서사와 브랜드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동일시하는 파격적인 스포츠 마케팅을 선도하며 업계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꿨다. 오리건 대학 육상 후배 였던 스티브 프리폰테인을 시작으로 테니스의 존 매켄 로를 거쳐, 1984년 당시 NBA 신인이었던 마이클 조던과 업계 관행을 깨는 최고 대우의 전속 후원 계약을 맺고 ‘에어 조던’을 출시한 결정은, 단순한 스포츠 용품을 전세계적인 문화 및 패션 아이콘의 반열에 올려놓은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나이키를 단순한 신발 제조사를 넘어 세계 1위의 스포츠 제국으로 성장시킨 나이트는 2016년 나이키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명예회장으로 2선에 물러났다. 같은 해그는 창업 초기부터 나이키 상장까지의 파란만장한 과정을 건조하면서도 솔직하게 담아낸 회고록 ‘슈독(Shoe Dog)’을 출간해 전 세계 창업가들에게 기업가 정신의 교본을 제시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모교인 오리건 대학교와 스탠퍼드 대학교 등에 십수억 달러를 쾌척하며 미국 굴지의 자선사업가로서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나이트는 80대 후반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중대한 위기에 처할 때마다 든든한 구심점 역할을 하며 나이키의 방향성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24년 하반기, 나이키가 과도한 소비자 직접 판매(D2C) 전환 전략의 부작용과 혁신 부재, 경쟁사들의 거센 추격으로 주가 폭락과 실적 부진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하자 이사회는 경영진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때 나이트는 존 도나호 전 CEO의 후임으로 과거 32년간 나이키에서 근무하며 말단 인턴에서 사장까지 올랐던 사내 베테랑 엘리엇 힐이 신임 CEO로 복귀하는 결정을 공개적으로 전폭 지지하며 내부 조직 안정화에 결정 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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