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패권의 전장이 소프트웨어 중심 생성형 모델에서 로보틱스와 모빌리티를 아우르는 ‘물리적 AI(Physical AI)’ 하드웨어로 확산됨에 따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한국을 향해 첨단 제조 시설의 자국 내 유치 압박과 전략적 파트너십 제안을 동시에 쏟아내는 현 상황은, 철저한 국익 계산과 미 내부의 역학 관계가 결합된 결과다. 이는 상호 이익 극대화를 정밀하게 계산하는 게임이론(Game Theory)의 협상 모델로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
2026년, 미국의 거센 투자 압박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내 정치적 타임라인이 작용하고 있다. 재선 가도의 가시적 성과와 지지율 방어를 위해 ‘러스트 벨트’를 비롯한 자국 내 첨단 제조업 공장 유치 및 고용 창출 지표를 조기에 증명해야 하는 정치적 조급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이론의 ‘최선 대안(BATNA)’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미국의 정치적 취약성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레버리지가 된다. 미국은 안보적 이유로 전 세계 제조·행동 데이터의 최대 온상인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했음에도 서방 진영 내에서 이를 대체할 인프라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디지털 전환(DX)의 구조적 지체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융합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상실했고, 유럽 역시 높은 규제 장벽과 IT 제조 기반의 약화로 첨단 양산 경쟁력이 크게 위축된 상태다.
반면 한국은 분단국가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속에서 정밀 중공업과 방산 인프라를 고도화해 왔으며, 과거 선제적으로 육성한 반도체 산업이 현재 AI 핵심 자산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및 파운드리 생태계의 독점적 지위로 이어지며 글로벌 공급망의 대체 불가능한 축으로 부상하였다. 미국 입장에서는 고도의 정밀 하드웨어 양산 능력과 초정밀 반도체 공급망을 동시에 즉각 가동할 수 있는 파트너로 한국 외에 대안이 없는 셈이다.
정치적 성과를 서둘러 입증해야 하는 미국이 구체적인 보조금이나 투자 조건을 미리 제시하는 행위는 게임이론상 ‘선제적 공약(Strategic Commitment)’의 오류를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자신들의 예산 하한선과 조급함의 크기를 시장에 먼저 노출한 셈으로, 협상 후발 주자인 한국에 정보의 우위를 제공한다. 만약 한국이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순응하지 않거나 중국과의 공급망 연결 고리를 유지할 경우, 미국은 대중 견제 전선의 무력화와 자국 내 고용 공약 차질이라는 치명적인 쌍둥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물론 현실 외교 무대에서 미국이 보유한 반격 카드 역시 만만치 않다. 반도체 장비 및 설계 자산에 대한 미국의 원천기술 통제권, 그리고 한국이 의존하고 있는 안보 우산과 에너지 공급망은 한국의 전면적인 독자 노선이나 중국과의 결탁을 제약하는 강력한 역(逆) 레버리지다. 미국 또한 한국에 장기적으로 의존하기보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을 흡수해 오하이오나 텍사스 등 미국 본토에 자립적인 제조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궁극적 목적을 지니고 있다. 즉, 한국이 가진 대체 불가능성의 시효는 미국 본토 공장이 완공되기 전까지의 ‘한시적인 기회의 창’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는 극단적인 대결 구도를 지양하되, 미국이 직면한 정치·지정학적 타임라인의 한계와 대안 부재를 정밀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한국을 주저앉히면 결국 미국의 대중 견제 전선과 국내 일자리 공약이 동시에 무너진다”는 논리로 미국을 우아하게 압박해야 할 것이다. 그저 미국 요구에 끌려다니는 하청 기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파격적인 세제 혜택(ITC) 및 보조금 확약, 핵심 원천 기술의 상호 교류,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 확보를 조건으로 결부하는 영리한 전략을 통해 이 냉혹한 패권 게임에서 실리를 극대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