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고전학파와 세이의 법칙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은 수요와 공급을 마치 종이를 자르는 가위의 양날에 비유했습니다. 윗날이나 아랫날 모두 중요하다는 이유에서겠죠. 그렇다면 국민소득은 어떨까요? 수요는 무시한 채그저 공급만 하면 그것이 국민소득의 크기일까요, 아니면 실제 수요로 이어진 크기가 국민소득일 까요?
고전학파는 국민소득이 공급 측면에 의해 결정된다는 확고한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거시경제학에서의 공급이란 총생산 즉 Y로 나타냅니다. 반면 수요는 총지출(AE), 이때 폐쇄경제를 가정하면 C+I+G가 되고요. 여기서 고전학파는 총지출이 변화한다고 해서 총생산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고전학파에게 있어 총생산의 변화란 곧 생산요소의 공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 구체적으로는 기술 진보만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관점에서 고전학파는 세이의 법칙을 제시하였습니다.
세이의 법칙(Say’s Law)
공급은 그 스스로의 수요를 창출한다(Supply creates its own demand)
지금 우리는 고전학파를 학습하는 만큼, 고전학파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말인즉슨 가격과 임금이 완전히 신축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는 뜻이고요.
그럼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어느 기업이 물건을 생산(Y)하면 그 대가로 소득(임금, 이자 등)이 발생할 것입니다. 물론 이 소득은 모두 소비(C)나 저축(S)으로 쓰입니다. 이때 저축(S)은 실질 이자율(r)의 유연한 조정을 통해 반드시 투자(I)로 전환됩니다. 왜냐? 고전학파가 그렇게 가정했기 때문이죠. (※ 자금시장에서 저축이 일종의 공급이라면 투자는 수요입니다. 실질이자율은 가격이고 요. 가격이 신축적으로 조정된다고 가정했으니, 둘(저축·투자)의 크기가 같아지는 균형이 달성되는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앞서 ‘고전학파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게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설령 재고가 남는다?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팔리기 마련입니다. 결국 총수요가 총공급에 미달할 일은 없습니다. 정리하면 생산된 것은 무조건 팔리게 되므로, 수요 부족으로 인한 불황은 장기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게 고전학파의 결론입니다.
[TIP] 고전학파의 이론은 대단히 정교합니다.
거시경제학을 처음 학습할 때 갖는 선입견 중 하나가 ‘고전학파가 틀려서 케인즈학파가 등장했다’라는 건데요. 사실 대공황을 고려하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전학파가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특히 지금 설명한 부분, 즉 ‘장기적으로 불황은 존재할 수 없다’라는 말은 적어도 이론 상으로는 적절한 해석입니다. (※ 지금 우리의 학습 단계에서는 이게 옳다 틀렸다, 판단하기보다는 이론 자체를 이해 하는 데에 주목해야 합니다)
같은 관점에서, 고전학파는 복잡한 경제 시스템을 분석의 편의를 위해 두 가지 독립적인 부문으로 나눕니다.
1. 고전적 이분법 (Classical Dichotomy)
앞으로 지루할 만큼 자주 접할 표현입니다. 이분법, 즉 둘로 나눴다는 뜻인데요. 고전학파는 크게 실물 부문과 화폐 부문을 구분했습니다. 여기서 실물 부문이란 주로 실질 변수, 그러니까 총생 산(Y)이라든지 실질임금(W/P) 같은 게 해당합니다. 반면 화폐 부문은 명목 변수를 다루는데요. 명목임금(W)이나 통화량(M)이 해당하고요. 고전학파는 “두 부문이 나뉘어져 있다” 즉 실질 변수는 실물 시장에서 결정된다고 보았습니다. (뒤이어 설명하겠지만 대부자금시장 같은 게 여기서 등장 합니다.) 참고로 케인즈학파는 고전적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즉 실질 변수가 화폐 부문의 영향을 받는다고 본 셈이죠.
2. 화폐의 중립성 (Monetary Neutrality)
고전적 이분법과 같은 맥락인데요. 여기서 중립성이란, 예컨대 화폐 공급(M)의 변화가 오직 명목 변수(물가, P)에만 영향을 미치고, 실질 변수(Y, r 등)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서 어느 경제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고 사과가 1,000원에 100개 거래되는데, 중앙은행이 돈의 양을 늘렸다고 해서 생산자나 소비자가 늘어난다든지 또는 사과 거래량에 영향을 준다거나 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사과의 가격만 1,000원에서 2,000원 이런 식으로 변화한다는 것이죠. (※ 여기서 사과 가격이 명목 변수이고 사과 거래량은 실질 변수라고 보면 됩니다.)
고전학파는 화폐를 가리켜 단지 교환의 편리함을 위한 ‘베일(Veil, 얇은 막)’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생산 활동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볼까요? 그동안 설명했던 모든 전제, 그러니까 가격·임금의 신축성이나 고전적 이분법, 화폐의 중립성에 비출 때 정부의 재정정책이나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또 고전학파는 이러한 정책을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간단합니다. 고전학파는 재정정책 특히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은 (후술하겠지만) 구축효과를 발생시키므로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간단히 말해, 정부가 개입하면 그만큼 자금시장(대부자금시장)의 수요가 증가하고 그것이 이자율 상승으로 이어져 민간의 투자가 감소한 다는 원리입니다. 결국 Y는 불변이 되는 거죠.
통화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폐의 중립성을 전제한 고전학파 관점에서 통화량 확대는 물가만 상승시킬 뿐입니다. 그래서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나 중앙은행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갖죠.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고전학파 모형은 오늘날에도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는 작은 정부론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으며 동시에 시장은 스스로 효율적으로 작동한다고 보는 (시장의 힘을 믿는)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