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鄭鎭弘, 1937~ )은 한국 종교학이 단순한 교리의 해설이나 신학의 부수적 분과를 넘어, 독자적인 언어와 방법론을 갖춘 ‘인문학’으로 정립되던 시기에 그 기틀을 마련한 거목이다. 193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비교종교학과 종교현상학의 학문적 체계를 심화한 그는, 한국 종교학의 지평을 ‘믿음의 영역’에서 ‘인식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학문적 여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지점은 종교를 진위(眞僞)의 판정 대상이 아닌, 인간 경험의 본질적인 구조로 분석하려는 종교현상학적 관점의 확립이었다. 이는 종교를 특정 종단의 내부 논리에 가두지 않고, ‘성(聖)과 속(俗)’의 변증법 속에서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의미화하는지 추적하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당시 한국 지성계에 종교를 ‘문화의 한 형식’으로 읽어내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했다.

정진홍의 업적은 한국 종교학의 ‘문법’을 세우는 작업으로 요약된다. 그의 저서 『종교학 서설』(1980)은 신화, 의례, 상징과 같은 종교학의 핵심 개념들을 한국어의 맥락에서 체계화한 역작으로, 여전히 이 분야의 고전적 토대로 기능한다. 또한 『한국종교문화의 전개』(1986)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다종교적 현실을 문화사적으로 조망하며, 종교가 형성하는 상징과 기억의 장을 공적 담론의 대상으로 끌어올렸다. 그 덕분에 종교학은 인문학 및 사회과학과 긴밀히 접속하며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필수적인 도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의 지적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철학은 저서의 제목이기도 한 “정직한 인식과 열린 상상력”에 응축되어 있다. 이는 신념을 강요하는 대신 사실 앞에 엄정할 것을 요구하는 지적 정직성, 그리고 타자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동시에 세우자는 요청이다. 이러한 태도는 학문이 단순히 상아탑의 논리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성숙에 기여해야 한다는 그의 시대적 책무와도 맞닿아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서 수많은 후학을 양성하고 은퇴한 이후에도, 그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서 지적 공공성을 지키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2008년 제17회 수당상을 수상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은 정진홍의 작업은, 종교라는 거울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정직하게 대면하려 했던 한 학자의 치열한 기록이다. 그의 학문적 유산은 오늘날에도 종교적 갈등과 이해의 부족으로 진통을 겪는 한국 사회에 ‘타자를 읽는 법’에 관한 소중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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