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율 급등에 리스크 관리 비상… 중저신용자 금융 소외 현상 심화 우려
국내 인터넷전문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명목으로 고신용자 위주의 보수적인 대출 영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범 당시 금융당국과 시장에 약속한 ‘중저신용자 대상 포용금융 실현’이라는 설립 취지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고금리 기조 장기화와 경기 침체 우려로 연체율이 급등하자, 인터넷은행들이 건전성 지표 방어를 위해 선제적으로 대출 문턱을 높인 결과다. 이에 따라 제1금융권에서 밀려난 서민과 취약차주들이 불법 사금융 등 고금리 대출 시장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건전성 악화 위기감에 대출 문턱 높인 인뱅 3사
인터넷전문은행 3사(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가 최근 고신용자를 중심으로 대출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당초 이들은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중저신용자를 포용하겠다는 목표로 인가를 받았으나, 최근 거시경제 환경의 악화로 인해 경영 전략을 대폭 수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부진 여파로 인해 인터넷은행의 주 고객층인 청년층과 소상공인의 채무 상환 능력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이에 따라 각 은행의 연체율과 고정이하여 신비율* 등 주요 건전성 지표가 금융당국의 권고치를 위협할 수준으로 상승했다. 은행권에서는 자본력이 상대 적으로 부족한 인터넷은행들이 대규모 부실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인위적으로 축소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건전성 관리가 시급해진 인터넷은행들은 우량 직장인이나 고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 및 신용대출 잔액을 늘리는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고정이하여신비율
은행이 빌려준 전체 돈(여신) 중에서 3개월 이상 연체되어 사실상 돌려받기 힘든 부실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은행의 자산이 얼마나 건강하고 안전한지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건전성 지표
대출의 5가지 등급과 ‘고정이하’의 의미: 은행은 대출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에 따라 대출을 다음 5가지 등급으로 분류
– 정상: 연체 없이 잘 갚고 있는 안전한 대출
– 요주의: 1개월 이상 ~ 3개월 미만 연체되어 주의가 필요한 대출
– 고정 (여기부터 부실): 3개월 이상 연체되었으나, 담보(주택 등)가 있어 원금은 회수할 수 있는 대출
– 회수의문: 3개월 이상 연체되었고 담보도 부족해 손실이 예상 되는 대출
– 추정손실: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해 자산 가치가 없는 100% 손실 대출
여기서 3~5단계에 해당하는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대출을 모두 더한 것을 ‘고정이하여신’이라고 함
고금리 쇼크와 부실 리스크 확대가 낳은 보수화 기조
인터넷은행이 대출 영업에서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취약차 주의 부실 리스크 전이 가능성이다. 중저신용자는 신용 점수가 낮고 담보 능력이 부족해 금리 변동성에 매우 취약한 특성을 가진다. 금리 인상기에는 이들의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연체로 직결될 확률이 일반 차주에 비해 월등히 높다. 더욱이 인터넷은행들은 출범 초기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공격적으로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려왔기 때문에, 경기 하강 국면에서 시중은행보다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강화를 주문하며 은행권 전반에 대출 조이기를 압박한 것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인터넷은행들은 수익성과 건전성을 동시에 확보 하기 위해 부도 위험이 낮은 고신용자 대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결국 리스크 회피 중심의 영업 행태로 고착화되고 있다.
설립 인가 조건 위배 논란과 중금리 대출 시장의 공백
가장 큰 쟁점은 인터넷은행들의 현재 영업 행태가 금융 당국으로부터 은행업 인가를 받을 당시 내세웠던 핵심 명분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과거 인터넷은행 도입 당시 기존 은행권이 품지 못하는 씬파일러(금융이력부족자)와 중저신용자에게 혁신적인 대안신용평가모형(CSS)*을 통해 중금리 대출을 공급 한다는 조건을 달아 특례를 부여했다. 그러나 현재 인터 넷은행들이 시중은행과 다를 바 없이 고신용자 주택담보대출 등 안전 자산 위주의 영업에 몰두하면서 무늬만 인터넷은행이라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이들이 중금리 대출 공급을 축소함에 따라, 신용점수 하위 50%에 해당 하는 차주들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로 밀려나는 연쇄 이동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전체 금융 시스템 내에서 서민들의 이자 비용을 폭증시키고 가계 경제의 질을 하락시키는 뇌관으로 작용하며, 포용금 융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낳고 있다.
대안신용평가모형(CSS, Credit Scoring System)
전통적인 금융 거래 정보 대신 비금융 대안정보와 인공지능(AI)·머 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개인 및 소상공인의 신용을 다각도로 평가하는 시스템
혁신 금융의 실패인가, 피할 수 없는 현실적 타협인가
시장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인터넷은행의 혁신 실패라는 비판과 현실적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동정론 으로 양분되어 있다.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측은 인터넷은행들이 그동안 장담해 온 대안신용평가모형의 변별력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해 숨은 우량 차주를 발굴 하겠다던 기술적 혁신이 고금리 파고를 넘지 못한 채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반면, 인터넷은행 업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은행의 본질적 가치인 자산 건전성이 붕괴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예금자 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맹목적인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는 오히려 무책임한 경영이라는 평가다. 금융산업의 특성상 규제와 거시경제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만큼, 인터넷은행에게만 무리하게 사회적 책임을 강요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팽팽하게 맞서며 정체성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신용평가모형 고도화 및 정책적 안전망 구축의 시급성
인터넷은행의 대출 보수화 현상은 국내 금융시장에 정교한 리스크 관리 기법 도입과 포용금융을 뒷받침할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선, 인터넷은행들은 통신 데이터, 이커머스 결제 내역 등 비금융 대안 데이터를 더욱 정밀하게 분석하여 신용평가모 형을 근본적으로 고도화해야 한다. 경기 침체기에도 부실 위험을 정확히 타겟팅할 수 있는 자체적인 리스크 헤 지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면, 결국 시중은행과의 금리 경쟁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금융당국의 획일적인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 목표치 부과 방식도 재고될 필요가 있다. 무조건적인 양적 목표 달성 압박보다는, 은행이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포용금융을 실천할수 있도록 대손보전기금 확대나 정책금융상품과의 연계 강화 등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와 안전망이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 민간 은행의 기술력과 공공의 정책적 지원이 결합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금융 혁신이 가능하다.
규제 완화와 관리 감독 사이, 당국의 딜레마와 과제
금융당국 역시 인터넷은행의 대출 보수화 사태를 두고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깊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한편으 로는 가계부채의 질적 악화를 막고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은행권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하지 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은행 설립 취지인 중저신용자 대출 공급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 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출 목표치 산정 방식을 일부 완화해주면서도, 서민금융 진흥원 등과 연계한 보증부 대출 상품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선회를 모색하고 있다. 무리한 대출 압박이 오히려 은행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유연한 규제 적용을 통해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향후 금융당국은 인터넷은행이 자체적인 신용평가 역량을 입증할 수 있도록 데이터 결합을 지원하는 동시에, 촘촘한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하여 틈새 시장을 메우는 역할을 회복하도록 유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금리 인하 기대감 속 건전성 중심의 제한적 성장 전망
향후 인터넷은행들의 대출 영업 기조는 당분간 현재의 보수적인 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하반기 들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으나, 누적된 가계부채 규모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등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역시 은행권 전반에 걸쳐 강력한 자본 확충과 손실흡수능력 제고를 요구하고 있어, 인터넷은행들이 무리하게 취약차주 대출을 확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