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에 막히자… 美, 한국까지 301조 겨눴다

상호관세 무효 뒤 ‘새 칼’ 꺼내… 한국은 흑자·과잉설비 명분으로 포함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16개 경제주체를 상대로 무역법 301조 조사에 착수한 것은, 단순한 통상 점검이라기보다 연방대법원 판결로 막힌 관세 압박을 다른 법률로 되살리려는 수순으로 봐야 한다. 미 연방대법원은 지난 2월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광범위 관세에 대해 “대통령 권한을 넘어섰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301조를 앞세워 다시 통상 압박에 나섰고, 한국은 대미 흑자와 제조업 공급능력을 이유로 조사 명단에 포함됐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3월 11일 한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인도, 멕시코, 대만, 베트남 등 16개 경제주체를 상대로 301조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USTR는 이들 경제권이 국내외 수요와 동떨어진 생산능력을 키워 왔고, 그 결과 과잉생산과 대규모 또는 지속적 무역흑자, 유휴설비가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서면 의견은 4월 15일까지 받고, 공청회는 5월 5일부터 연다. 조사 결과 해당 정책이 미국 상업에 부담을 준다고 판단되면, 301조에 따라 관세나 비관세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이번 조사의 정치적 맥락은 더 분명하다. 로이터는 이번 301조 조사를 두고 대법원이 불법이라고 본 기존 관세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긴급 조치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연방대법원은 2월 20일 IEEPA가 광범위한 관세 부과 권한까지 주는 법은 아니라고 판단했고, 판결 직후 트럼프 측은 다른 법적 수단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보수 성향 대법관의 반대의견조차 “잘못된 법 조항을 골랐을 뿐, 다른 법률로 같은 종류의 관세를 시도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번 301조 카드는 바로 그 ‘다른 법률’인 셈이다. 법원에 막히자 통상법 공구함에서 더 날카로운 공구를 다시 꺼낸 것이다.

한국이 왜 명단에 들어갔는지도 공고문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USTR는 한국에 대해 “크거나 지속적인 무역흑자”가 구조적 과잉생산의 증거라고 적시했다. 한국은 전자장비, 자동차·부품, 기계, 철강, 선박을 중심으로 글로벌 상품무역 흑자를 내고 있고, 2024년 무역수지는 520억달러 흑자로 2023년 100억달러 적자에서 급반전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과의 상품·서비스 무역흑자도 2024년 560억달러, 2025년 6월까지 최근 4개 분기 기준 약 490억달러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 한국 정부가 석유화학 부문의 설비 감축 필요성을 인정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미국이 한국을 중국처럼 ‘적대국’으로 본다기보다, 미국 제조업을 압박하는 흑자형 공급국으로 분류해 압박 명분을 세운 셈이다.

한국 정부도 이번 조사를 단순한 형식 절차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로이터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미국이 이번 조사를 통해 대법원 판결로 무효가 된 관세를 다른 방식으로 복원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보고 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이 조사 기간을 4~5개월로 줄여 여름쯤 다시 관세 수준을 손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국회에서 이번 조사가 “예상 범위 안”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국회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전략산업 투자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관세와 환율, 301조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판단이다.

한국은행 책무에 ‘고용안정’을 넣자는 발상, 왜 신중해야 하나

한국은행법에 ‘고용안정’을 추가하자는 주장은 일자리와 민생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일견 타당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목적조항은 경제정책의 지향점을 나열하는 목록이 아니라, 통화정책이라는 제한된 수단을 운용하는 법적 기준이다. 한국은행의 법정 목표를 수정하는 문제는 정책 수단의 실효성과 책임의 경계를 따져보아야 하는 제도 설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현행 한국은행법의 체계는 뚜렷하다. 제1조는 한국은행의 목적으로 물가안정을 명시하고, 제1조 2항은 통화신용정책 수행 시 금융안정에 유의하도록 규정한다. 제3조는 정책의 중립성과 한국은행의 자주성을 보장하며, 제4조는 물가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루도록 정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물가안정을 중심축으로 삼되, 금융안정과 정부 정책과의 조화를 고려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결과다.

이 체계에 고용안정을 법정 목적으로 추가하면 정책 목표의 명확성이 저해될 수 있다. 중앙은행은 금리와 유동성 조절을 통해 시장의 기대를 관리하는 기관이다. 물가와 고용이 동시에 법정 목표가 되면, 금리 조정 시마다 각 목표 간의 상충 관계(trade-off)로 인해 정책의 정당성이 분산될 우려가 있다. 목표가 다변화될수록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도 모호해진다.

정책 수단과 목표 사이의 적합성도 검토해야 할 대목이다. 중앙은행의 기본 수단은 금리와 유동성 조절이다. 고용은 금리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제도, 산업구조, 인구 변화, 기술혁신, 규제 환경 등 비통화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복합적인 지표다. 통화정책이라는 단일한 수단으로 이러한 다층적인 고용 구조를 정밀하게 제어하겠다는 발상은 정책 수단의 한계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

미국 연준(Fed)의 사례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준은 물가안정과 최대고용을 함께 추구하지만, 공식 전략문서를 통해 최대고용은 직접 측정할 수 없으며 노동시장의 구조적 요인에 따라 변동하므로 고용에 대해 고정된 수치 목표를 두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연준조차 고용 목표의 가변성과 비통화적 요인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배제한 채 제도를 단순 비교하여 도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유지 측면에서도 신중함이 요구된다. 정부는 구조적으로 물가안정보다 경기 부양과 성장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고용안정이 법정 목적에 명시되면 경기 둔화기마다 정치권이 고용 유지를 명분으로 금리 인하 압박을 가할 논거가 강화될 수 있다. 이는 물가안정을 위한 중앙은행의 독립적 판단을 저해하고, 시장의 기대인플레이션 관리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고용안정의 일차적 책임은 재정·산업·노동정책을 운용하는 정부에 있다. 재정지출, 조세지원, 직업훈련, 산업구조 개편 등은 고용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단들이다. 중앙은행은 경기 변동의 충격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고용 구조 자체를 설계하거나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관은 아니다. 각 기관의 역할 분담이 명확할 때 정책 전체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이미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운용 과정에서 성장과 고용 등 실물 경제 지표를 점검하고 있다. 최근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도 성장의 하방 리스크와 물가 흐름, 금융안정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법정 목적에 고용이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고용 상황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지금의 체계가 현실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국회에는 한국은행법에 고용안정을 명시하고 금통위 의결 사항에 고용정책 분석 등을 추가하는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다. 2024년 8월 기획재정위원회에 회부된 이후 2025년 2월 소위에서 다뤄지는 등 실제 제도 개편 절차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제도는 의도보다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중앙은행이 본연의 역할인 통화가치 안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제도 설계의 기본이다.

고용은 분명 중대한 국가적 과제이나, 이를 중앙은행의 법정 책무로 규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한국은행의 목표를 확대하는 상징적 조치보다 정부의 실질적인 고용 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 우선이다. 중앙은행에 과도한 미션을 부여하기보다 본연의 기능이 충실히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보다 책임 있는 제도 운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