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브렉시트 10년, 노동당발 EU 재가입·재협상 논의

英 브렉시트 10년, 노동당발 EU 재가입·재협상 논의 본격화

-경제난 속 집권당 내부서 복귀론 부상… EU는 ‘특혜 불가’ 선 그어-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이후 10년 만에 영국 정치권에서 EU 재가입 및 재협상 논의가 공식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저성장과 고물가 등 경제적 충격이 누적되면서 집권 노동당 내부를 중심으로 단일 시장 복귀를 포함한 관계 재설정 요구가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개혁당 등 보수 진영의 강력한 반발이 예고된 데다, EU 집행위원회 역시 영국의 체리피킹(유리한 조건만 선택)식 접근을 일축하고 있어, 향후 재협상을 둘러싼 험난한 진통이 예상된다.

지지율 하락 직면한 노동당… 차기 당권 주자 중심 친유럽 노선 공론화

최근 영국 정치권에서 유럽연합(EU) 재가입 및 재협상 논의가 재점화된 핵심 배경은 집권 노동당 내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 변화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정권 교체를 이뤄낸 키어 스타머 총리의 내각이 최근 국정 운영 동력 상실과 지지율 하락에 직면하면서, 당내 유력 인사들이 새로운 정치적 돌파구로 EU와의 관계 개선 카드를 꺼내 들었다. 특히 노동당 내 차기 당권 주자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기존의 ‘브렉시트 유지’ 당론에서 벗어나, 관세동맹 복귀나 단일 시장 재참여를 포함한 EU와의 전면적인 재협상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나섰다. 2016년 국민투표 이후 영국 정치권에서 브렉시트 합의의 근본적인 수정을 거론하는 것은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금기사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실시된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 이반을 수습하기 위해, 전통적인 친유럽 성향 유권자들을 결집하고 당내 입지를 강화하려는 차기 권력 주자들의 선명성 경쟁이 맞물리면서 해당 논의가 공식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구조적 한계 직면한 경제… 수출 급감·노동력 부족에 따른 저성장 고착화

영국 정치권이 브렉시트 번복 논의를 꺼내든 근본적 원인은 탈퇴 이후 가시화된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장기 침체다. 영국 예산책임처(OBR)를 비롯한 주요 경제 기관들은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의 장기 생산성이 약 4%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새로운 통관 절차와 비관세 장벽으로 인해 대유럽 연합 수출 규모는 탈퇴 이전 대비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더욱이 유럽 대륙 출신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유입이 제한되면서 농업, 물류, 서비스업 등 영국 산업 전반에 걸쳐 심각한 구인난이 발생했다. 이는 고스란히 임금 인상 압박과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져 영국의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을 고착화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제 지표가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국민들의 실질 구매력이 감소함에 따라, 무역 장벽을 철폐하고 규제를 완화해 독자적인 경제 부흥을 이루겠다던 과거 탈퇴 찬성파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결과적으로 경제계와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단일 시장 복귀를 요구하는 여론이 과반을 넘어서며 정치권의 논의를 강제한 것이다.

영국의 제한적 단일 시장 접근 요구와 EU 측의 ‘전면 수용’ 원칙 충돌

재협상 및 재가입을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양측이 제시하는 협상 조건의 간극이다. 영국 노동당 일각과 경제계는 상품 및 서비스 무역에 국한해 단일 시장에 재접근하는 이른바 ‘선별적 협력’을 희망하고 있으나, EU 집행위원회는 영국의 이러한 체리피킹식 접근 방식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EU 측은 노동 이동의 자유를 포함한 EU의 4대 기본 원칙을 전면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한 관세동맹 및 단일 시장 복귀는 불가하다는 원칙을 고수 중이다. 전면적인 신규 재가입으로 선회할 경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영국이 EU에 다시 가입하려면 과거 회원국 시절 누렸던 독자적인 파운드화 통화 유지 및 솅겐 조약(국경 통제 면제) 적용 예외 등의 막대한 특권을 포기해야 한다. 유로화 의무 도입과 대규모 EU 예산 분담금 납부 등 영국 유권자들이 정치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가혹한 조건들을 백지상태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은 논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제도적, 현실적 장벽으로 지목된다.

단기적 국면 전환용 수단 지적… 훼손된 산업 공급망의 단기 복원 불가론

현재 불거진 재가입 및 재협상 논의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과 주요 외신은 실현 가능성보다는 정치적 수사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경제 정책의 실패를 만회하고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동당의 국면 전환용 카드일 뿐, 실제 정책으로 집행할 수 있는 외교적 동력과 세부 실행 계획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영국의 주류 경제계는 정부의 정책 방향성 전환 자체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이미 지난 10년간 대륙으로 상당수 이전된 금융 인프라와 재편된 제조업 공급망을 단기간에 복원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브렉시트 탈퇴 협상 과정에서 극심한 행정적 피로감을 겪은 EU 회원국들이 영국의 정권 교체나 지지율 변동에 맞춰 기존 합의안을 쉽게 수정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냉정한 현실 인식도 제기된다. 결과적으로 구체적인 외교적 로드맵 없이 당내 권력 투쟁과 국내 여론전에 기대어 제기된 현재의 재가입 논의는 당장의 경제 회복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감정적 투표가 초래한 국가 경쟁력 훼손… 상호 의존적 경제 통합의 중요성

영국의 현 상황은 치밀한 비용 편익 분석 없이 진행된 국가 중대 결정이 초래한 장기적 후유증을 명확히 시사한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이민자 문제에 대한 반감과 배타적 민족주의에 기대어 이루어진 정치적 결정이 결과적으로 국가의 펀더멘털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고 글로벌 무대에서의 외교·경제적 고립을 자초했음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한 번 이탈한 국제 다자간 경제 통합 체제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탈퇴 당시보다 수십 배 이상의 시간과 국가적 비용, 그리고 정치적 양보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이는 현대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서 국경 통제 강화와 독자 생존을 내세운 무역주의 정책이 실물 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반면교사 역할을 한다. 국가의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담보해야 할 중대한 외교·경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 포퓰리즘에 휩쓸린 투표가 어떠한 파국적 결과를 낳는지 전 세계 정치권과 민주주의 국가들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27개국 만장일치 승인 등 절차적 난관… 영국 내 우파 결집으로 국론 분열 심화

향후 영국 정치권이 당론을 모아 EU 재가입이나 전면 재협상을 공식 추진하더라도 실제 성사 여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EU에 재가입하거나 기존 무역 협정을 대폭 수정하기 위해서는 27개 회원국 전체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수적이나, 최근 유럽 내 선거에서 약진한 극우 성향 정당들이 영국의 무조건적인 복귀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영국 내부의 거센 정치적 저항도 피할 수 없다. 강경 브렉시트 찬성파가 이끄는 영국개혁당 등 보수 우파 진영은 재가입 논의 자체를 2016년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중대한 훼손으로 규정하고 결사 저지 투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만약 집권 당이 무리하게 제2의 국민투표를 추진하거나 EU와의 재협상 테이블을 강행하더라도, 이는 지난 10년간 영국 사회가 겪었던 극심한 국론 분열과 정치적 마비를 다시 한번 재현할 공산이 크다. 결국 브렉시트의 여파를 수습하기 위한 영국의 대유럽 관계 재설정 작업은 당장의 타결보다는 최소 10년 이상의 험난한 줄다리기와 진통이 수반되는 장기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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