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에 ‘고용안정’을 추가하자는 주장은 일자리와 민생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일견 타당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목적조항은 경제정책의 지향점을 나열하는 목록이 아니라, 통화정책이라는 제한된 수단을 운용하는 법적 기준이다. 한국은행의 법정 목표를 수정하는 문제는 정책 수단의 실효성과 책임의 경계를 따져보아야 하는 제도 설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현행 한국은행법의 체계는 뚜렷하다. 제1조는 한국은행의 목적으로 물가안정을 명시하고, 제1조 2항은 통화신용정책 수행 시 금융안정에 유의하도록 규정한다. 제3조는 정책의 중립성과 한국은행의 자주성을 보장하며, 제4조는 물가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루도록 정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물가안정을 중심축으로 삼되, 금융안정과 정부 정책과의 조화를 고려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결과다.

이 체계에 고용안정을 법정 목적으로 추가하면 정책 목표의 명확성이 저해될 수 있다. 중앙은행은 금리와 유동성 조절을 통해 시장의 기대를 관리하는 기관이다. 물가와 고용이 동시에 법정 목표가 되면, 금리 조정 시마다 각 목표 간의 상충 관계(trade-off)로 인해 정책의 정당성이 분산될 우려가 있다. 목표가 다변화될수록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도 모호해진다.

정책 수단과 목표 사이의 적합성도 검토해야 할 대목이다. 중앙은행의 기본 수단은 금리와 유동성 조절이다. 고용은 금리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제도, 산업구조, 인구 변화, 기술혁신, 규제 환경 등 비통화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복합적인 지표다. 통화정책이라는 단일한 수단으로 이러한 다층적인 고용 구조를 정밀하게 제어하겠다는 발상은 정책 수단의 한계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

미국 연준(Fed)의 사례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준은 물가안정과 최대고용을 함께 추구하지만, 공식 전략문서를 통해 최대고용은 직접 측정할 수 없으며 노동시장의 구조적 요인에 따라 변동하므로 고용에 대해 고정된 수치 목표를 두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연준조차 고용 목표의 가변성과 비통화적 요인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배제한 채 제도를 단순 비교하여 도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유지 측면에서도 신중함이 요구된다. 정부는 구조적으로 물가안정보다 경기 부양과 성장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고용안정이 법정 목적에 명시되면 경기 둔화기마다 정치권이 고용 유지를 명분으로 금리 인하 압박을 가할 논거가 강화될 수 있다. 이는 물가안정을 위한 중앙은행의 독립적 판단을 저해하고, 시장의 기대인플레이션 관리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고용안정의 일차적 책임은 재정·산업·노동정책을 운용하는 정부에 있다. 재정지출, 조세지원, 직업훈련, 산업구조 개편 등은 고용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단들이다. 중앙은행은 경기 변동의 충격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고용 구조 자체를 설계하거나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관은 아니다. 각 기관의 역할 분담이 명확할 때 정책 전체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이미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운용 과정에서 성장과 고용 등 실물 경제 지표를 점검하고 있다. 최근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도 성장의 하방 리스크와 물가 흐름, 금융안정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법정 목적에 고용이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고용 상황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지금의 체계가 현실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국회에는 한국은행법에 고용안정을 명시하고 금통위 의결 사항에 고용정책 분석 등을 추가하는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다. 2024년 8월 기획재정위원회에 회부된 이후 2025년 2월 소위에서 다뤄지는 등 실제 제도 개편 절차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제도는 의도보다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중앙은행이 본연의 역할인 통화가치 안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제도 설계의 기본이다.

고용은 분명 중대한 국가적 과제이나, 이를 중앙은행의 법정 책무로 규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한국은행의 목표를 확대하는 상징적 조치보다 정부의 실질적인 고용 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 우선이다. 중앙은행에 과도한 미션을 부여하기보다 본연의 기능이 충실히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보다 책임 있는 제도 운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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